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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 회고

해당 글은 개인적으로 그냥 쓰는 글입니다. 큰 의미도 내용도 없으니 보시지 않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냥 쓰는 글

분명 올해 초에 2022년 회고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쓰지 못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진짜 바빴다. 운좋게 번역 제안이 들어와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술서 번역에 도전했고, 회사도 이직한지 반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또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하는 오프라인 파이콘을 준비하다보니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나와 10년을 넘게 함께 살아주신 우리 냥님들의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고, 갑작스럽게 가족 건강에도 빨간불이 울렸다.

정말 굵직한 일들만 쓴 건데도 저렇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스스로도 2023년은 정말 정신이 없었겠다 싶다. 내가 가진 역할과 책임감의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는 뒤늦게 회고를 쓰는 병든 내가 남았다. 최근에 나는 놀랍게도 여름 감기에 걸렸다. 감기는 약 없어도 3일이면 낫는다고 생각하던 내가 2주가 넘도록 기침을 달고 산다. 이것이 늙어가는건가 싶다.

현실이 바쁠 때는 밀려오는 일들을 쳐내는 것만으로도 허덕였는데 이제는 제법 미래를 다시 공상할 시간이 남았다. 나는 정확히 2년 6개월동안 (정규직으로서) 밥벌이를 했고, 벌써 3년차 데이터 엔지니어가 되었다. 1년 전만에도 낭떠러지 앞에 놓여진 아기사자가 된 것 마냥 “성장”하지 않으면 “실패”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스스로를 압박했다. 생각해보면 참 이분법적인 논리이다. “성장하지 않음 == 실패”을 의미하는게 아닌데 올바르게 쉴 줄 몰랐다.

그래서인가 정신을 문득 차리니 내 세상은 일과 데이터와 코드로 범벅이었다. 부전공으로 철학을 선택할 정도로 남의 고수준 공상 읽기를 좋아하던 내가 IT분야 외 도서를 쳐다보지 않았고, 개발자나 엔지니어인 나는 있지만 그냥 나는 없었다. 주변 사람들도 같은 분야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에 관심이 있었고 무엇을 추구했는지를 잃어버렸다. 3년만에 완벽한 K-직장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내 상황을 비관하는 것은 아니다. 난 오히려 내게 주어진 기회들이 감사하다. 비관하고 싶은 건 내 실력 정도일까. 주어진 기회들을 내가 부족하여 놓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눈 앞에 다시 낭떠러지가 아른거린다. 컨디션 난조로 침대에 누워있어도 왠지 게으르고 싶어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약 먹고 일에 집중이 된다면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동의했다면 몸, 정신 여러모로 괜찮은게 아니라고 전하고 싶다.

주저리 썼지만 2023년 상반기 회고는 간단하다. 건강도 챙기고 힘들면 좀 쉬면서 달리자. 인생이 길수도 있다. 사람 인생은 모르는거니까 무조건 길다고 단언하고 싶지는 않다. 알고보니 내 인생이 남들에 비해 2배속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아무말은 각설하고 이제 하반기를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제 번역 초안도 끝났고, 파이콘도 끝났고, 주변 이들의 건강도 어느정도 안정화 되었다. 다시 공상을 시작해보자. 나는 어떻게 2023년 하반기를 마무리할 것인가? 2024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가?

일단 첫 번역서 교정을 최선을 다해 진행하고 성공적으로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도 뒤돌면 아쉬운게 당연하다지만 첫 번역서라서 애정이 깊다. 최선을 다하고 싶다.

다음으로는 IT분야 외 책을 10권 이상 읽고 싶다. 그렇게라도 압박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상하고 싶다. 벌써 1권을 다 읽고 2권째 읽고 있는데 점점 이전의 내 모습을 찾는 기분이라 묘하다. 애초에 기술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부터가 신기하다.

또 운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아야 그나마 체력이 유지되는 것 같다. 시간은 유한하고 할 일이 넘쳐나도 운동은 1순위로 챙기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이드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다. 아무래도 하고 싶은 개발할 때가 가장 재밌는거 아니겠는가? 번아웃으로 이 업계를 손절하기 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맘 편하게 개발하면서 다시 애정을 키우고 싶다.

사실 그 외에도 혼자 당일여행 가기, 좋아하는 음식 찾기, 영어 스피킹 연습하기 등등 자잘한 계획들도 머리속에 돌아다닌다. 앞으로 블로그 글도 다시 활발하게 작성하고 싶다. 이제는 기술 뿐만 아니라 개인사도 곁들인. 2023년, 4개월 남았는데 역시 인간은 욕심이 끝없는 존재인가 보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죽음이 빨리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은 투쟁이고 죽음은 영원한 안식인데, 삶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면 상대성 이론의 원리처럼 시간이 빠르게 흘러 죽음이 어느 순간 내 앞에 당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열심히 살라고 한다. 진정한 염세주의자가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삶을 똑바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지지만 이제는 그냥 실행해보려고 한다. 호기심에 도전하고 즐거움에 지속하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던 나로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