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늦은 『데이터 분석을 위한 줄리아』 번역 후기

이번 글은 IT 도서 번역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을 통해 느낀 점들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들어가며

사실 내가 번역한 책은 2024년 3월에 출간하였다. 너무 늦은 후기이지만 그동안 정신없었던 일상을 정리하면서 최근에서야 회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게 또 번역할 수 있는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려웠던 점과 좋았던 점을 남겨보려고 한다.

놀랍게도 처음 번역을 맡게된 것은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이다. 이전에 한참 Julia라는 언어에 빠져 공부하면서 블로그에 이런저런 글들을 정리해두었는데 아마 그걸 보시고 연락을 주신 것 같았다. 평소에 내가 IT 도서를 사서 보던 출판사였기에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이렇게 좋은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동안 영어로 된 논문과 글만 얼마나 읽었는가! 번역은 어렵지 않을꺼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는 바로 출판사 팀장님께 진행해보고 싶다고 답장을 드렸다.

멈추고 더 생각해

이때 생각을 더 했어야 했다.

번역 시 어려웠던 점

처음에는 내가 공부하던 방식대로 하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번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무식의 힘이었다.

먼저 번역을 한다는 것은 영어로 쓰여진 모든 기술 용어를 한국어로 변경하는 작업이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가 발생한다. 나도 업계에서는 영어 그대로 쓰는 용어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에코 시스템, 네임드 튜플을 한국어로 어떻게 표현하는게 맞을까? 라는 고민부터 시작해서 parameter와 argument는 한국어로 뭐라고 정의하는게 맞지? 병기는 언제 해야할까? 등등 정말 기본적인 용어조차 뭐가 맞는건지 선택하는게 어려웠다.

두 번째로 어려웠던 점은 문맥을 그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영어 기반으로 작성된 글은 기본적으로 복합 문장이 많았다. 한국어의 경우 두 문장이나 3개의 문장으로 나눠서 적어야 더 깔끔할 수 있는데, 영어는 whichthat으로 모두 묶어서 쓰는 것이다. 또한 영어는 형용사가 뒤에서 명사를 수식하여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 그대로 번역하면 흔히 머리가 무거운 문장들이 생겨났다. 그대로 번역하자니 문장이 너무 길어져서 의미가 헷갈려지고, 또 나누자니 원작자의 의도가 내 생각으로 재해석되는건 아닐까 두려워지는 것이다. 초반에 이게 무서워서 한 문장으로도 30분씩 고민했다. 하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자연스레 나만의 방법과 규칙들이 생겨나긴 했다.

세 번째로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것! 바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리 회사는 재택이 베이스이기 때문에 사무실 출퇴근 시간이 세이브되고 나름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장인은 일과 가정만 운용해도 하루가 바쁘다. 일이 바쁠 때는 가정이 편안하다가도 또 일이 여유로워지면 가정에 사건사고가 터지곤 한다. 나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일이 바쁠 때는 일감을 쳐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일을 끝내고 뒤돌아보니 가족이 아파 병간호를 하는 등 해결해야 할 또다른 이슈들이 존재했다. 번역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고 특성 상 한번에 오래 앉아서 챕터 별로 해야 문맥이 매끄럽게 연결된다. 마감일자의 압박 속에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완료해야 했다.

번역을 하며 얻은 것

하지만 번역 작업을 진행해서 후회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기회가 내게 찾아와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번역을 하면서 기본적인 개념들을 다시 한번 공부할 수 있었다. 업계 용어로 퉁쳐서 비교적 러프하게 알고 있던 개념들을 번역이라는 작업을 하면서 내 언어로 안착시키고 그게 결국 더 깊은 이해로 이어졌다. 역시 제대로 공부하려면 내 언어로 만들라는 말이 실제로 맞는 거구나라는 걸 느꼈다.

또 번역을 진행하면서 Julia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이전에는 개념서만 보고 내 방식대로 개발을 진행했었는데 이 책은 줄리아 언어 생태계를 설명하고 실용적인 사용법을 정리해두었기에 새로 알게된 것들이 많았다. 주로 사용하던 2020년보다는 확실히 많이 발전했다는게 몸소 느껴져서 더욱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번역이라는 분야에 도전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 번역 프로젝트가 어떻게 추진되고 계약이 이루어지는지 등 업계 프로세스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들을 배울 수 있었다.

마무리

번역 경력도 없고, 어떻게 보면 주니어 커리어를 가진 내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모든 면이 초보라서 답답한 부분도 많았을텐데 이 프로젝트를 함께해 주신 출판사 팀장님과 주변 분들께 감사드린다. 다음 번역 기회가 온다면, 그땐 더 좋은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평소에도 공부를 많이 해두어야겠다.

혹시나 번역한 책이 어떤건지 더 궁금한 분들을 위해 책 소개 페이지를 첨부한다.


많이 늦은 『데이터 분석을 위한 줄리아』 번역 후기
https://dev-bearabbit.github.io/ko/Julia/julia-0/
Author
Jess
Posted on
2025년 1월 28일
Licensed u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