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AI시대의 이직
AI 시대를 지나고 있는 6년차 데이터 엔지니어의 커리어 고민과 이직에 대한 기록입니다.
시작하며
요즘 개발자를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개발자를 그만두거나 다른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도 이전보다 많아진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AI가 코드를 짜주고, 오류를 찾아주고, 이제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지 함께 생각해 주기까지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개발자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많은 일들을 AI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다. 이런 세상에 갑자기 던져진 나 역시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커리어를 만들어가야 할까.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던 올해, 꽤 오랫동안 함께했던 회사를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개발자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
사실 처음 다른 동료들에게 AI의 성장이 두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I가 개발의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고 있지 않나?
내가 생각하는 개발자는 단순히 코드를 작성하거나 특정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를 발견하고 기술을 이용해 그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AI는 꽤 재미있는 도구였다.
예전에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직접 수많은 방법을 찾아보고 하나씩 테스트해봐야 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면 공부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고 실제로 아이디어를 구현해보는 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그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빨라졌다.
내가 모르는 것들을 물어볼 수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접근법을 제안받을 수도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바로 테스트를 해볼 수도 있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이 축적해온 지식에 언제든 질문할 수 있는 일종의 집단지성이 생긴 것 같았다. 덕분에 이전이었다면 쉽게 건드리지 못했을 문제에도 일단 도전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꽤 재미있었다.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재미있는 문제가 보였고 그걸 해결하고 나면 또 다른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 결과 데이터 엔지니어로 시작한 내 프로젝트 이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정체를 알 수 없게 되어갔다.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다가 인프라를 건드리고, 검색을 하다가 추천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제품까지 만들고 있었다.
진정한 잡부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꽤 많은 도파민을 느꼈던 것 같다.
문제를 발견하고 기술과 새로운 도구를 이용해 실제로 해결해보는 것
결국 내가 개발자로서 좋아했던 것은 그 과정이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AI를 보며 개발자의 미래를 걱정할 때, 적어도 나에게 AI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내게 AI는 개발자의 본질을 빼앗는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문제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에 가까웠다.
그럼 왜 이직하나
AI 때문에 개발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면 굳이 왜 회사를 옮길까?
생각해보면 이유는 크게 4가지 정도인거 같다.
1. 플랫폼에서 비즈니스로
그동안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데이터 플랫폼과 파이프라인을 만들고 고도화하는 일을 많이 경험했다. 처음에는 플랫폼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다. 더 안정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더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고, 기존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조금씩 관심사가 달라졌다. 플랫폼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그 데이터가 실제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에 점점 더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 커리어에서는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비즈니스에 가까운 곳으로 가보고 싶었다.
2. 매너리즘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일이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아졌다. 플랫폼을 만들고 고도화하는 동안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정말 많았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도 하고, 기존 구조를 바꾸기도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제와 마주쳤다. 하지만 어느 정도 플랫폼 고도화가 마무리되면서 상황도 조금씩 달라졌다.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는 순간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매너리즘을 느끼기 시작했다. 익숙한 환경에서 익숙한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보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새로운 도전
오랫동안 한 환경에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일하는 방식에 익숙해진다. 사용하는 기술도 익숙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를 확인해야 하는지도 알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면 되는지도 손에 익게 된다.
하지만 그만큼 다른 환경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다른 회사에서는 어떤 도구를 사용할까?
같은 문제를 다른 엔지니어들은 어떻게 해결할까?
지금과 전혀 다른 환경에서는 나는 어떻게 일하게 될까?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툴을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 해결 방식을 보면서 다시 배우고 싶었다.
4. 어느새 6년차
6년차는 애매한 연차다. 신입은 당연히 아니고 그렇다고 한 분야를 다 안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대신 이 시점엔 선택지가 아직 열려 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전문성을 가진 엔지니어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제를 찍먹해봤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비즈니스에 밀접한 문제들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양쪽의 경험을 충분히 쌓고 나면 앞으로 어떤 문제에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시니어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지도 조금은 선명해질 것 같다.
인생은 새옹지마
위기는 흔히 기회라고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요즘만큼 이 말이 실감 나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위기가 생겼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주니어의 진입로가 좁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특정 직군의 수요가 줄고 있다는 이야기도 근거 없는 걱정은 아니다. 다만 그만큼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기회도 분명히 생겼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혼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이렇게 넓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개발자를 계속 하기로 했다.
나는 개발자가 단지 코딩을 하는 사람이나 특정 도구를 다루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의 삶을, 사회를,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개발을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언어도 프레임워크도 계속 바뀔 것이고 지금 내가 잘 쓴다고 믿는 도구도 몇 년 뒤엔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도구에 매몰되지 않는 커리어를 쌓고 싶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풀었는지로 설명되는 커리어를 말이다.